아침이 되면 우리는 종종 밤의 목격담을 듣습니다. “어젯밤에 또 이를 갈았어”, “일어나서 뭔가 중얼거리더라”, “눈을 뜨고 자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그제서야 떠올리게 돼요. 좋은 밤의 기준이 꼭 ‘몇 시간 잤는지’만은 아니라는걸요.
우리는 흔히 이런 잠버릇을 무의식적인 버릇이나 고쳐야 할 습관쯤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면의학에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요. '왜 하필 자는 동안, 저런 행동이 나타날까?' 그리고 '왜 어떤 날은 조용하고, 어떤 날은 유난히 심해질까?'라고 말이죠.
최근 연구들은 잠버릇을 하나의 성격 문제나 우연한 행동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뇌가 잠드는 과정에서 보내는 신호, 다시 말해 ‘밤에만 열리는 뇌의 상태 보고서’에 가깝다고 설명하죠. 이제부터 우리는 이 보고서를 한 장씩 펼쳐보려 합니다. 잠버릇이라는 작은 단서로 뇌가 밤사이 어떤 모드로 움직였는지 들여다보면서요.
우리는 잠을 흔히 전원 스위치를 끄듯, 한순간에 꺼지는 상태로 떠올리지만 실제 수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잠드는 동안 뇌는 수면의 여러 단계를 이동하며, 각 단계마다 역할이 다른 회로들이 작동하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각성 시스템이 서서히 활동을 낮추고 얕은 잠에 빠져들면 기억을 정리하는 일부 회로가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하고, 깊은 수면에 들어서면 주로 자율신경계와 항상성 조절 시스템을 통해 회복과 에너지 충전이 이루어집니다. REM 수면에 들어서면 그제야 감정과 꿈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요.
즉, 뇌의 각 회로는 같은 시각에 동시에 잠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도와 순서로 수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완전히 자는 상태’와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 사이의 어정쩡한 구간이 생기는데요. 수면의학에서는 이를 '미세 각성'혹은 '부분 각성'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뇌의 일부만 잠깐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가장 깊은 잠으로 알려진 비 REM 수면(N3) 단계에서도 이런 미세 각성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전두엽이나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 각성계 일부가 짧게 깜빡 켜졌다가 다시 꺼지기를 반복할 수 있죠. 이때 깨어난 회로와 여전히 자고 있는 회로가 뒤섞이면, 우리가 말하는 잠버릇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즉, 잠버릇은 ‘깊이 자고 있다’와 ‘깨어 있다’가 명확히 갈라지지 않고 서로 겹쳐지는 순간에 생기는 틈새 현상에 가깝습니다. 현재 수면의학은 잠버릇을 특정한 버릇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가 잠드는 과정에서 잠깐 균형을 잃으며 드러나는 신호로 해석하는데요. “어젯밤, 뇌가 이런 방식으로 잠들었어요”라고 알려주는 흔적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거예요.
잠버릇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면의 두 얼굴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REM 수면과 비 REM 수면인데요, 잠버릇의 종류는 대부분 이 두 얼굴 중 어느 수면 모드에서 균형이 흐트러졌는지에 따라 갈리거든요.
REM 수면은 ‘꿈은 풀가동, 몸은 정지’ 모드로, 이 단계에서 뇌는 낮만큼이나 활발하게 움직이며 영화 같은 꿈을 만들어냅니다. 대신 안전을 위해, 뇌는 몸에 브레이크를 걸어요. 뇌간이 운동 신경을 꽉 붙잡아, 웬만해선 몸이 움직이지 않게 막아두죠. 덕분에 꿈속에서는 전력 질주를 해도 현실에서는 얌전히 누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브레이크가 느슨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도망치고, 소리치고, 팔다리를 휘두르는 행동이 그대로 튀어나오는 렘수면 행동장애(RBD)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꿈이 현실로 새어 나온 상태이지요.
반대로 비 REM 수면은 ‘몸은 자동, 정신은 오프라인’ 모드에 가깝습니다. 특히 가장 깊은 비렘수면 'N3단계'에서는 뇌가 “지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야 한다”라고 강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소음이나 호흡 문제 같은 자극이 끼어들면, 뇌가 완전히 깨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반응할 수 있어요. 렘수면 행동장애와 반대로 몸을 움직이는 회로는 켜지지만, 판단과 기억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여전히 숙면 중인 상태죠. 그래서 눈은 뜨고 걷고, 물건을 만지지만 다음 날엔 기억이 없습니다. 몽유병이 딱 이런 장면입니다.
REM에서 생긴 잠버릇
꿈은 생생한데, 몸을 묶는 끈이 풀린 상태
비 REM에서 생긴 잠버릇
몸은 먼저 깼지만, 정신은 아직 꿈 속인 상태(몽유병)
같은 밤, 같은 침대에서 벌어져도 잠버릇의 정체는 이렇게 다릅니다. 결국 잠버릇은 ‘어느 수면 모드에서 균형이 무너졌는지’를 알려주는 힌트인 셈이죠.
예를 들어, 꿈을 꾸는 회로는 켜져 있는데, 근육을 눌러두는 억제 장치가 느슨해지면, 꿈속 행동을 실제 몸으로 따라 하는 렘수면 행동장애(RBD)가 생길 수 있고, 운동을 담당하는 회로만 먼저 깨어나면, 의식은 없는 상태에서 걷거나 앉는, 우리가 흔히 아는 '몽유병·혼돈' 각성 같은 '비 REM 파라솜니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원리를 바탕으로, 잠버릇을 뇌 상태의 관점에서 하나씩 살펴볼 차례입니다. 잠버릇은 종류마다 먼저 깨어난 뇌의 회로가 다르고, 그에 따라 행동과 의미도 달라지죠.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겪는 잠버릇들은, 각각 어떤 뇌 상태에서 나타나는 걸까요? 잠꼬대부터 이갈이, 몽유형 움직임까지, 대표적인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잠꼬대 😵
잠꼬대는 REM 수면과 얕은 비 REM 수면(N1~N2) 사이, 혹은 비 REM 중 미세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에 잘 나타납니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말과 발성을 담당하는 회로만 살짝 깨어 있다는 건데요. 뇌 전체는 여전히 잠의 리듬을 타고 있는데, 입만 먼저 눈을 뜬 셈이죠. 그래서 말은 나오지만 맥락은 엉성하고, 아침이 되면 기억도 남지 않습니다.
2) 이갈이 : 수면 브룩시즘 🦷
이갈이는 주로 비 REM 수면에서 나타납니다. 이때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신호는 심장박동과 호흡이 순간적으로 치솟는 미세 각성이에요. 쉽게 말해, 자는 중인데 몸이 “잠깐 긴급 상황이야”라고 오해하는 순간이죠. 이때 긴장을 담당하는 교감신경이 먼저 활성화되면서 턱 근육이 반사적으로 반응합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이갈이가 심한 사람일수록 수면이 더 불안정하고, 스트레스·불안 수준이 높은 경향이 반복적으로 보고됩니다.
3) 몽유형 움직임(걷기·앉기·정리하기) 🚶
몽유병이나 혼돈 각성처럼 몸을 움직이는 잠버릇은 깊은 비 REM 수면(N3)에서 발생합니다. 뇌가 깊이 자려는 힘과 외부 자극에 반응하려는 각성 신호가 충돌하면서, 각성계가 불완전하게 켜지는 것이 핵심 원인이에요. 이때 걷고, 물건을 만지고, 정리까지 하지만 판단과 기억을 맡은 전두엽은 여전히 잠들어 있는데요, 이때 행동은 그럴듯해 보여도, 목적은 없고 다음 날 기억도 남지 않죠.
4) 눈 뜨고 자기 😳
자는 동안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은 조금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꽤 이해 가능한 반응입니다. 깊은 비 REM 수면 중에도 시각계를 포함한 일부 영역만 깨어 있는 국소 각성 상태로 설명되는데요. 수면이 자주 끊기거나 불안도가 높을 때, 뇌가 주변을 살피기 위해 반쯤 깬 ‘경계 모드’를 유지하려는 반응으로 해석됩니다.
잠꼬대
REM수면~비 REM(N1,N2)에서 나타남
입은 깼는데, 뇌는 아직 꿈속에 있는 상태
이갈이
비 REM수면에서 나타남
잠결에 긴장 시스템이 먼저 깨어,
턱이 대신 반응한 결과
몽유형 움직임
깊은 비 REM(N3)에서 나타남
몸은 깼지만, 정신은 아직 잠든 상태
눈 뜨고 자기
깊은 비 REM의 얕은 단계에서 나타남
자는 중에도
주변을 감시하는 뇌의 경계 상태
이렇게 보면 잠버릇은 밤사이 뇌에서 누가 먼저 깼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단서에 가깝지 않나요? 밤마다 달라지는 행동들에는 생각보다 꽤 정직한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모든 잠버릇이 같은 의미를 갖는 건 아닙니다. 어떤 건 지나가도 되는 신호이고, 어떤 건 한 번쯤 꼭 들여다봐야 할 경고에 가깝죠. 구분의 기준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1) 일반적인 잠버릇에 가까운 경우 🛌
가벼운 잠꼬대, 가끔 나타나는 이갈이, 뒤척이거나 잠시 몸부림치는 정도의 행동은 많은 사람에게서 흔히 관찰됩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 잠이 부족했던 시기, 술을 마신 밤처럼 REM·비 REM 수면에서 미세 각성이 잠깐 늘었을 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생리적 범위로 분류돼요. 이런 경우라면 “요즘 나 좀 피곤했구나” 하고 생활 리듬을 점검하는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2) 주의 깊게 봐야 할 위험 신호 ⚠️
반면 렘수면 행동장애(RBD)처럼 꿈속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욕설을 하거나, 상대를 때리는 듯한 동작을 하거나, 침대 밖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은 단순한 잠버릇을 넘어 신경계 변화와 연관된 신호로 여겨집니다. 특히 50세 이후에 이런 행동이 새롭게 시작됐다면, 뇌간의 신경퇴행 가능성을 시사하는 초기 신호로 간주돼 국제 가이드라인에서도 수면다원검사와 신경과 평가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파킨슨병이나 루이소체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보고되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해요.
단순한 잠버릇처럼 보이더라도,
아래와 같은 증상이 있다면,
수면 무호흡, 약물 영향, 만성 수면 부족 같은
숨은 원인이 없는지 한 번쯤 점검해 보세요
1️⃣ 잠버릇의 잦은 반복
2️⃣ 주간 졸림 증가
3️⃣ 인지 기능 저하(기억력 감퇴)
4️⃣ 정서 상태 변화(우울·불안)
잠버릇은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밤에 얼마나 자주 흔들렸는지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활 습관은 잠버릇을 키우고, 어떤 루틴은 그 흔들림을 잠재우는데요. 이제 그 차이를 만드는 조건들을 아래 표와 같이 모아봤습니다.
잠버릇을 줄이는 기본 루틴 💡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몸과 뇌를 깨우는 각성 신호를 조금씩 낮춰주는 루틴이 필요해요. 취침 몇 시간 전부터는 카페인과 알코올 섭취를 피하는 것이 좋은데, 특히 알코올은 잠을 깊게 이어주는 대신 오히려 수면을 잘게 나누고 REM 수면을 흔들어 이갈이나 잠꼬대 같은 잠버릇을 악화시키기 쉽습니다.
또한 규칙적인 취침·기상 시간을 지키고, 소음과 빛을 최소화한 수면 환경을 마련해 주면 깊은 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불필요한 각성 반응도 함께 줄일 수 있어요. 또한 잠들기 전 심호흡이나 가벼운 스트레칭, 이완 훈련처럼 긴장을 풀어주는 루틴을 더하면 자율신경이 서서히 부교감 신경 우세 상태로 전환되면서, 수면 중 과도하게 깨어나는 반응이 완화되고 이갈이·잠꼬대 같은 잠버릇도 점차 줄어들 수 있게 돼요.
밤마다 나타나는 잠버릇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신호는 그냥 스쳐 지나가도 되지만, 어떤 신호는 뇌가 조심스럽게 보내는 S.O.S에 가까워요. 폭력적인 움직임, 침대 밖으로 뛰어내리는 행동, 반복되는 낙상, 50세 이후 새롭게 시작된 꿈연기(꿈속 행동을 몸이 실제로 따라하는 현상), 또는 렘수면 행동장애나 수면 무호흡 등이 보인다면 수면 클리닉이나 신경과의 도움을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이런 행동은 단순한 잠버릇이라기보다, 뇌간과 각성 시스템이 보내는 이상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가벼운 잠꼬대나 드문 이갈이처럼 흔한 잠버릇은 대개 “요즘 뇌가 조금 과로 중이에요”라는 알림에 가깝습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 잠이 부족했던 날들, 수면 리듬이 흐트러졌을 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라면 지나치게 걱정하기보다, 생활 습관과 밤 환경을 한 번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잠버릇은 고쳐야 할 결함이 아니라, 뇌가 밤사이 남긴 메모에 가깝습니다. 그 메모를 무시할지, 읽어볼지는 우리의 선택이죠. 오늘 밤, 혹시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지금 내 뇌가 보내는 신호는 무엇일까?” 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