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소리는 언제나 숙면으로 가는 열쇠였습니다. 어릴 때는 외할머니가 나지막이 불러주시던 자장가를 들으면 어느 순간 잠에 들었고, 학창시절에는 ‘뚜뚜뚜뚜’ 소리로 뇌파를 조절해준다는 기계를 공부할 때나 잠잘 때나 귀에 꽂고 살았죠. 몇 년 전부터는 잠이 안 오는 밤이면 ASMR 영상을 틀어놓고 잠을 청하곤 합니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저처럼 본능적으로 소리를 활용하는 분들이 참 많으실 텐데요, 이러한 소리를 활용해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소리의 주파수가 뇌파에 미치는 영향이 밝혀짐에 따라 이를 활용해 숙면을 돕는 슬립테크의 발전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답니다.
(1) 소리가 뇌파에 미치는 영향 👨⚕️
20세기 중반, EEG(뇌전도) 기술의 발전으로 뇌파를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면서부터 수면 상태에서 델타파, 세타파와 같은 저주파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저주파 활성을 인위적으로 유도하면 수면 상태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2000년대 들어 화이트 노이즈, 바이노럴 비트와 같이 소리 자극이 뇌파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숙면의 도구로써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의 슬립테크가 소리로 델타파, 세타파를 유도해 숙면에 이르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죠.
델타파(0.5-4Hz) 깊은 수면 상태에서 주로 나타나며, 신체 회복과 면역 기능 강화에 도움을 줍니다.
세타파(4-7Hz) 가벼운 수면과 깊은 이완 상태에서 나타나며, 창의성과 직관력이 높아지는 단계입니다.
알파파(8-12Hz) 편안한 각성 상태에서 나타나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이완을 촉진합니다.
베타파(12-30Hz) 집중과 각성이 필요한 상태에서 나타나며,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반영합니다.
(2) 현대판 자장가, 잘 때 뭐 들어요? 😴
그렇다면 숙면을 유도하는 주파수를 내는 소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 텐데요, 앞서 말씀드린 델타파와 세타파를 활성화시키는 트렌디한 숙면 사운드, 이른바 ‘현대판 자장가’의 종류와 원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개해 드리는 숙면을 부르는 소리는 이미 알고 계시는 익숙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 백색소음(화이트, 핑크 노이즈)
과학자들이 소리의 주파수와 수면의 질 간의 관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건 20세기 중반부터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이트 노이즈'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이 때부터였어요. 화이트 노이즈는 모든 주파수의 소리를 균일하게 혼합한 것으로, 교통 소음이나 말소리 등 주위의 불규칙한 소음을 오히려 차단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2017년 한 연구에서 화이트 노이즈를 사용했을 때 입면 시간(잠에 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40% 줄어든다는 유의미한 결과를 발표하는데요.
*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
다음은 요즘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숙면 도움 공식 중 하나인 ASMR 입니다. ASMR은 특정 소리에 의해 일어나는 쾌감과 이완 반응을 의미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 부드러운 소리, 두드림 소리 등을 들었을 때 반응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ASMR 효과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논란이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ASMR을 단순한 유행이나 플라시보 현상으로 치부하며,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 ASMR 소리를 들었을 때 뇌에서 깊은 수면 단계에 해당하는 델타파(0.5~4Hz의 안정적인 숙면상태의 뇌파)가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면서 ASMR이 실제로 수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수면의 질 향상, 입면시간 단축 모두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볼 때 ASMR 소리가 현대판 자장가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것 같네요. 저 또한 잠이 너무 안 올 때는 ASMR의 도움을 받곤 하는데요, 여러분도 잠들기 어려우시다면 ASMR을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구나 손쉽게 들어볼 수 있답니다. 처음에는 고요한 소리가 익숙하지 않겠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금세 머리 뒤쪽이나 등, 어깨와 같이 주로 신체 뒷부분에 분포하는 자율 신경계가 자극되는 일종의 간지럽거나 두근거리는 증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실제 밤 비행기를 탈 때 느껴지는 기내의 편안함을 구현한 소리나, 조용한 적막 속에서 넘기는 책장 소리, 가죽 가방이나 패브릭 만지는 것과 같은 소리 정도가 고요하면서 숙면에 취하기 적당하여, 잠이 안오신다면 한번 쯤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네요.
*바이노럴 비트(Binaural Beats)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숙면 사운드에 비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아래 영상을 들어본다면 아마 가장 흥미로운 소리일 것입니다. 1839년 처음 발견되었지만 최근 들어서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바이노럴 비트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각 귀에 들려줄 때 주파수의 차이에 해당하는 새로운 주파수를 뇌에서 인식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양쪽 이어폰을 착용하고 들어보세요😌)
(1) 슬립테크가 들려주는 자장가 💤
* 바이노럴 비트 생성기 (Brid.zzz)
최근 출시된 ‘브리즈(Brid.zzz)’는 앞서 소개해드린 동적 바이노럴 비트에 AI기술을 접목해 개인화한 대표적인 슬립테크 기기입니다. 브리즈는 슬립 트래킹 기능을 탑재한 전용 무선 이어셋과 수면 데이터를 분석하는 앱으로 사용자의 뇌파를 측정하여 수면 단계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제공합니다. 사용자가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돕고, 잠든 후에는 실시간으로 수면 상태를 분석하여 맞춤형 바이노럴 비트를 생성하는 게 주요한 기술이죠. 브리즈 무선 이어셋은 '입면 단계', '렘(REM) 수면', '얕은 수면', '깊은 수면', 그리고 '수면 중 깸' 등의 다양한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수면 자세와 수면 중 뒤척임 횟수, 취침 및 기상 시간 등의 정보를 전용 앱에 기록하여 사용자에게 정밀한 수면 패턴 분석을 제공해줍니다. 하루 걸음 수와 같은 일상정보를 수집해 개인 맞춤형 수면 케어 솔루션도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유난히 활동량이 많았던 하루였다면 사용자가 깊은 수면 상태로 더 빨리 들어가도록 돕는 주파수의 바이노럴 비트를 생성하는 방법을 제안해준답니다.
* 화이트 노이즈 머신(백색소음기)
다음은 슬립테크 기기이나 스마트폰 보다 전에 제작된 기기로, 아날로그한 제품을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마팩의 Dohm DS 제품은 무려 스마트폰 이전에 출시한 백색소음기인데요. 마팩사가 제작한 특별 내부 구조와 실제 팬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놀랍게도 자연스러운 '진짜' 아날로그 백색소음입니다. 요즘엔 워낙 스마트폰 어플로 다양한 종류의 백색소음을 들을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가까이 놓고 기계음을 들려준다는 게 영 안심되지 않아 만들어진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 점은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아날로그라는 점도 제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고, 작동 방식이 단조롭고 튼튼해, 오래 쓸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이트 노이즈 제품이 특히 육아 꿀템이라는 사실도 아시나요? 화이트 노이즈 머신 또는 백색 소음기를 검색하면 유독 신생아 용품이 많이 나오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바와 같이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고 입면 시간을 줄여주는 화이트 노이즈의 특성을 신생아를 재우는 데에 활용하는 것이죠. 신생아는 물론, 육아로 인해 늘 잠이 부족한 부모님과 21세기 불면증을 겪는 모두에게도, 또 저의 숙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슬립 App 서비스 (Calm, Pzizz)
특정 주파수를 기반으로 한 명상 음악이나 소리를 제공하는 슬립앱은 올해의 앱으로 선정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Calm’, 'Pzizz' 와 같은 슬립앱은 사용자가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도록 부드러운 음악, 자연의 소리, 화이트 노이즈와 같은 다양한 사운드 트랙을 제공합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선호하는 사운드의 종류, 음량, 그리고 재생 시간을 조정하여 개인 맞춤형 슬립 사운드 트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숙면을 도와주는 소리의 효과를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2) 소리를 활용한 슬립테크의 전망 ✨
소리의 주파수를 활용하여 뇌파를 유도하는 기술은 불면증 치료와 슬립테크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수면 패턴, 움직임, 심박수, 호흡 등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AI 기반 수면 추적 기술은 이미 스마트 워치나 링과 같은 웨어러블 기기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자리 잡고 있죠. AI는 이렇게 수집한 사용자의 수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적절한 주파수의 바이노럴 비트를 생성하거나 화이트 노이즈의 강도를 조절하는 등 개인의 수면 상태에 맞춤형 소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AI 수면 추적 기술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슬립테크가 발전함은 물론, 나아가 불면증 치료에까지 보편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모든 빛이 섞이면 흰색이 되고, 모든 물감이 섞이면 검정색이 됩니다. 이번 아티클을 쓰면서 모든 것이 섞이면 흰색 혹은 검정색의 심플한 모노톤이 되듯, 모든 주파수가 섞인 백색소음이 오히려 소음을 차단해주는 꿀잠을 부르는 소리가 된다는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 것처럼 현대인의 수면장애를 소리 기반 슬립테크의 발전으로 해결하려는 다양한 연구도 흥미로웠습니다. 정반대 개념과도 같은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지점을 목격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소리 기반 슬립테크에 ‘현대판 자장가’라는 별명을 지어보았습니다.
소개해 드린 다양한 현대판 자장가들이 잠 못 드는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